예전에 한국에서 있었던 ‘버버리 노래방’ 상표 분쟁 사건을 기억하시는 분이 있으실 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은 2009년 정 모씨 부부가 천안에서 운영중인 ‘버버리 노래클럽’을 상대로 영국의 명품 브랜드 ‘버버리’사가 상호 등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 및 부정경쟁행위 금지 등에 관한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정씨 부부는 이 노래방을 1년 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수해서 운영해 오던 터라 그 이름을 본인들이 지은 것도 아니고 더욱이 ‘버버리’라는 이름으로 옷을 판 것도 아닌데 무슨 손해 배상이냐며 법정 타툼을 벌였고 1심에서 ‘소비자가 해당 노래방을 영국의 ‘버버리’사가 운영할 것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적고 정씨 부부의 노래방으로 인해 ‘버버리’사가 어떤 경제적 손해를 입었는지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는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영업 주체를 혼동할 가능성은 없으나 버버리라는 이름을 노래 연습실에 사용하는 행위는 버버리라는 저명 브랜드의 이미지와 신용 등을 손상 또는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른바 영미 판례법에서 유래한 ‘상표가치 희석화 법리’ (trademark dilution)에 기반하여 버버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한편,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지아니 베르사체’도 비슷한 시기에 서울에서 ‘호텔 베르사체’라는 모텔을 운영하던 방 모씨를 상대로 상호 등 사용금지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지아니 베르사체는 패션물품 외에도 호텔 서비스업과 관련해서도 일찌감치 ‘베르사체’ 상표 등록을 완료했지만 문제는 베르사체의 상표 등록 날짜보다 방씨의 ‘호텔 베르사체’ 상호 사용 날짜가 더 빨랐다는 것입니다. 1심 재판부는 방씨의 선사용 사실에 무게를 두면서 ‘버버리 노래방’ 사건의 1심때와 마찬가지로 ‘국내 소비자들이 ‘호텔 베르사체’ 상호를 보고 지아니 베르사체와 연결된 것으로 오인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방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방씨의 ‘호텔 베르사체’ 상호 선사용권을 인정할 수 없고 방씨가 모텔 벽면 등에 ‘베르사체’ 이름 등을 붙여 사용하는 행위는 지아니 베르사체의 서비스표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라며 1심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호주에서도 상표법 (Trade Marks Act 1995)상 상표권의 효력은 등록된 물품이나 서비스 (또는 유사 물품/서비스)에만 미치기 때문에 등록 상표의 범위를 벗어나는 물품이나 서비스에 동일한 상표가 사용되는 상황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식회사 애플의 상표 “Apple”은 컴퓨터, 모바일 폰, 소프트웨어, 통신 기기 등과 관련하여 호주특허청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상표는 특정한 물품 또는 서비스를 지정해서 등록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유명한 브랜드라 하더라도 지구상의 모든 물품이나 서비스와 관련해서 독점권을 획득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Apple”이라는 이름을 제삼자가 기타 다른 물품/서비스와 관련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데, 실제로 호주에서 “Apple Dental” 이란 상표는 의료 서비스업과 관련하여 Mark Casiglia라는 사람이, “Apple Taxis”는 택시, 버스 등 운수 서비스와 관련하여 MACT Holding Company Pty Ltd란 회사가 상표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애플택시는 나름 유명해서 도로에서 도로에서 심심치 않게 애플택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Apple”이라는 이름이 카지노나 모텔과 관련해서 사용되면 어떨까요? 카지노나 모텔이 불법적인 서비스는 아니나 주식회사 애플 입장에서는 ‘상표가치 희석화 법리’를 들어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고 사용자가 주식회사 애플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광고 등을 한다면 (예를 들어 ‘한입 베어문 사과 로고’를 함께 사용하는 등의 행위) 한국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과 유사한 호주의 소비자법 (Australian Consumer Law)에 의거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호주의 소비자법이나 판례법에 근거한 법적 조치는 상표법 하에서의 그것보다 막강하지 않아서 저명 상표의 경우 방어목적 상표 (Defensive trade mark)로 등록해놓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습니다. 방어목적 상표는 요건이 까다롭기는 하지만 본업과 연관이 없는 물품 또는 서비스와 관련해서 등록을 허여해 주고 소정 기간 사용되지 않더라도 상표가 취소되지 않는 상표의 종류입니다. 최근에 호주에 등록된 방어목적 상표를 살펴 보면 건전지 회사 듀라셀은 ‘Duracell로고’ 상표를 ‘술, 와인 등’에, 식품회사 베지마이트는 “Vegemite” 상표를 ‘자동차 등’에, 나이키는 ‘부메랑 로고’ 상표를 ‘맥주, 과일 주스 등’에, 그리고 버진그룹은 “Virgin” 상표를 ‘콘돔, 마사지기계, 커피 등’의 상품에 등록하였습니다.
작성자: 김현태 호주변호사, 상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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